AI 면접과 표준화된 인간성: 기계는 어떤 사람을 뽑는가?

기계가 사람을 평가하는 시대 이제는 입사지원서뿐 아니라 면접조차도 AI가 담당하는 시대입니다. AI 면접은 지원자의 표정, 말투, 키워드 사용, 응답 속도, 시선 처리 등을 분석해 적합도 점수 를 매기며, 기업은 이를 기준으로 최종 면접자를 결정합니다. 표면적으로는 공정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떤 사람이 ‘좋은 지원자’인지에 대한 기준이 기술적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중립성을 의심받고 있습니다. 즉, AI는 인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정해진 기준에 따라 인간을 분류하고 표준화된 인간성을 요구하는 필터로 작동 합니다. 정답을 아는 사람만 통과하는 구조 AI 면접은 학습된 데이터에 기반해 특정 언어 사용, 정서 표현, 비언어적 반응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예를 들어 밝은 표정, 빠른 응답, 논리적인 말투, 높은 음성의 안정성 등이 우선시되며, 반대로 불안한 표현, 긴 침묵, 다층적인 맥락 제시는 감점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면접 스킬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정체성과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배제되는 구조 를 만들 수 있습니다. 사이보그 페미니즘은 이러한 평가 방식이 기술을 통한 인간성의 규격화이며, 특정 성격·정체성·배경을 가진 사람들만을 ‘정상’으로 간주하는 시스템 이라 지적합니다. 기술은 어떤 인간을 선호하는가 AI가 선호하는 인간상은 비가시적으로 존재합니다. 대체로 ‘말 잘하고 빠르게 반응하며 에너지가 있어 보이는’ 사람, 즉 표준화된 커뮤니케이션 모델에 잘 맞는 사람 이 높은 점수를 받습니다. 이는 내향적인 사람, 감정 표현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 특정 언어나 억양에 제한이 있는 사람들에게 구조적인 불이익 을 줄 수 있으며, 동시에 기업 문화에 ‘비슷한 사람들만 반복해서 들어오는 동질화 현상’을 강화합니다. 알고리즘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은 다양성과 예외를 제거하고, 기술 친화적인 효율성 중심 인간 모델만을 재생산 합니다. 인간은 점수화될 수 있는가 AI 면접 시스템은 한 ...

생명과 특허: 생명체를 소유할 수 있는가?

유전자도 소유할 수 있는 시대 인간의 DNA가 특허로 등록되고, 종자의 유전자가 기업의 소유로 분류되는 시대입니다. 생명공학 기술은 유전자를 분석하고 편집하고 조작하는 수준을 넘어, 유전자 자체를 지적 재산권의 대상으로 삼는 체계 를 만들어냈습니다. 대표적으로 유전자 기반 진단 키트, 종자 개량 기술, 특정 질병과 연관된 유전자 서열 등이 기업에 의해 특허화되면서, 생명체 일부가 법적 소유 대상이 되는 구조 가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이 기술 발전은 과학적 진보인 동시에, 생명이 누구의 것인가를 다시 묻게 만드는 윤리적 질문 을 동반합니다. 생명은 상품이 될 수 있는가 특허 제도의 목적은 발명자를 보호하고 혁신을 장려하는 것이지만, 생명체의 유전적 구성요소가 특허 대상이 되면서 생명 자체가 산업의 부속물처럼 다뤄지는 현실 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농업 분야에서는 특정 유전자 조합을 가진 종자가 특허화되면서, 농민들은 매년 씨앗을 새로 구매해야 하며, 저장하거나 재사용할 권리를 잃게 됩니다. 이는 기술이 생명 순환의 자율성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작동 하는 사례입니다. 사이보그 페미니즘은 이런 구조를 단지 산업 논리가 아니라, 자연과 생명에 대한 지배적 사고방식이 기술을 통해 제도화되는 과정 으로 비판합니다. 생명 데이터는 누구의 것인가 인간의 유전자 정보 역시 상업적 활용의 대상입니다.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의 정보는 연구 목적으로 기업과 공유되며, 때로는 제약·보험 산업의 데이터로 전환됩니다. 이때 당사자는 자신의 유전 정보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구체적으로 알기 어렵고,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권리 침해나 차별에 대비하기도 어렵습니다. 생명 데이터를 ‘익명화’했다고 해도, 정밀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개인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이는 정보 비식별화의 한계와 생물학적 프라이버시의 취약성을 드러냅니다. 기술은 생명의 정의를 바꾸고 있다 생명체의 유전자를 수정하고, 인공 생명체를 실험하며, 특정...

생체 인식 기술과 자유: 기술은 나를 보호하는가, 감시하는가?

기술은 우리를 식별하고 분류한다 생체 인식 기술은 이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스마트폰 잠금 해제부터 공항 출입국 심사, 출퇴근 출석, 금융 인증, 심지어 아파트 출입까지도 얼굴, 지문, 홍채, 음성 등의 생체 정보로 이루어집니다. 표면적으로는 더 빠르고 편리하며 안전한 기술로 홍보되지만, 이 시스템은 동시에 우리를 지속적으로 식별하고, 기록하고, 분류하는 구조 로 작동합니다. 즉, 생체 인식 기술은 단순한 인증 수단을 넘어서 개인의 움직임과 존재를 추적하는 감시의 수단 이 되며, 이는 자유와 안전 사이의 긴장 관계를 낳습니다. 우리는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가 생체 인식의 편리함은 그만큼의 데이터 제공을 대가로 요구 합니다. 얼굴 사진, 음성 패턴, 걸음걸이 정보, 심장 박동, 체온 등의 정보는 한 번 저장되면 삭제가 어렵고, 악용 가능성도 큽니다. 특히 해킹이나 유출이 발생할 경우 비밀번호처럼 쉽게 변경할 수 없는 생체 정보의 특성상, 한 번의 침해는 평생의 노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생체 인식 시스템은 사용자가 동의한다고 가정하지만, 그 동의는 ‘이 서비스를 사용하려면 어쩔 수 없이’ 클릭하는 구조에 불과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기술 사용에 대한 자율적 결정권을 사실상 제한하고 강제하는 방식 으로 작동합니다. 누구를 더 많이 감시하는가 생체 인식 기술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일부 커뮤니티, 특히 이주민, 저소득층, 장애인, 비표준 신체를 가진 사람들 은 기술적 오류나 차별적 데이터로 인해 더 쉽게 배제되거나 과잉 감시 대상이 됩니다. 예를 들어, 어두운 피부톤을 가진 사람은 얼굴 인식 정확도가 떨어지며, 특정 발음이나 억양을 가진 사용자는 음성 인식에서 오류가 더 많이 발생합니다. 사이보그 페미니즘은 이처럼 기술이 ‘객관적’이라는 명목 아래 특정 몸과 목소리를 중심으로 설계되고 다른 존재들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는 점 을 문제 삼습니다. 감시는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으며, 기술은 이미 사회의 권력 구조를 반영한...

디지털 피로 사회: 우리는 왜 멈추지 못하는가?

연결은 왜 쉬지 못하게 만드는가 24시간 접속 가능한 세상에서 우리는 언제든지 일할 수 있고, 언제든지 대답할 수 있으며, 언제든지 소비할 수 있습니다. 푸시 알림, 메시지, 피드, 업무 메일, 영상 콘텐츠는 쉬지 않고 흐르고, 우리는 ‘지금 확인하지 않으면 놓칠 것’ 같은 감각 속에서 계속 반응합니다. 디지털 기술은 일과 일상, 휴식과 업무, 개인과 사회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며, 끊김 없는 삶을 정상화하고 멈춤 없는 존재를 이상화 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늘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점점 더 피로해지고 있다는 모순에 빠져 있습니다. 멀티태스킹은 능력이 아니라 조건이다 하나의 화면으로 채팅을 하면서 음악을 듣고, 뉴스를 확인하고, 메일에 답하고, 영상도 흘려보는 멀티태스킹은 디지털 사회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기술은 이런 동시 작업을 가능하게 만들었지만, 실제 우리의 뇌는 그만큼 많은 정보를 처리하도록 진화하지 않았습니다. 지속적인 정보 전환은 집중력을 약화시키고, 감정적 과부하를 유발하며, 일상의 사소한 결정조차도 ‘과도한 처리’로 인한 피로감 을 낳습니다. 사이보그적 존재로서 우리는 기술과 연결되었지만, 기술에 의해 분산되고 조각난 인지 상태 를 감당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피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디지털 피로는 단지 개인의 ‘약함’이나 ‘시간 관리 부족’으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회 구조와 기술 설계, 플랫폼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지속적 주의 요구와 반응 압박의 산물 입니다. 예를 들어 빠르게 소비되는 콘텐츠 구조는 사용자가 멈추지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피드백을 즉시 요구하는 SNS는 반응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불안 을 강화합니다. 사이보그 페미니즘은 이처럼 피로조차도 구조적으로 생산되고 관리되는 사회적 감정 으로 바라보며, 기술 사용의 윤리적 재구성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왜 로그아웃하지 못하는가 디지털 플랫폼은 사용자의 시선과 시간을 ‘머물게 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콘텐츠 자동 재생, 끝없이 이어지는 피드...

디지털 이중화: 온라인 속 또 다른 나, 정체성은 몇 개인가?

나는 온라인에서 누구로 살아가는가 SNS, 커뮤니티, 아바타 플랫폼, 메타버스 등 디지털 환경에서 우리는 다양한 ‘나’를 구성하며 살아갑니다. 현실에서는 조용한 사람이 온라인에서는 적극적이고, 오프라인의 사회적 지위와 무관하게 가상 공간에서는 전혀 다른 캐릭터로 활동하기도 합니다. 이런 정체성의 다중성과 전환 가능성 은 디지털 환경의 강점으로 여겨지지만, 동시에 정체성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구조 로도 작동합니다. 디지털 세계에서의 나, 현실의 나, 타인이 인식하는 나 사이의 간극은 점점 더 벌어지며, 우리는 어느 하나의 ‘진짜 나’를 특정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디지털 공간에서는 정체성이 지속적으로 생성되고 재편집됩니다. 우리는 프로필 사진을 바꾸고, 닉네임을 설정하며, 게시물을 선택적으로 공유함으로써 스스로의 사회적 자아를 구성 합니다. 이때 정체성은 본질이라기보다 디지털 매체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조정되고 조율되는 수행적 결과물 에 가깝습니다. 사이보그 페미니즘은 정체성을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 기술, 맥락을 통해 구성되는 유동적 실천 으로 이해합니다. 따라서 온라인에서의 정체성 전환은 개인의 위선이나 이중성이 아니라, 기술적으로 중재된 존재 방식의 일부 로 보아야 합니다. 아바타는 나인가, 나를 대표하는 무엇인가 메타버스나 게임 속에서 우리는 아바타를 통해 소통합니다. 그 아바타는 때로 현실의 모습과 전혀 다르며, 성별이나 나이, 인종, 외모를 자유롭게 선택하거나 재조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자유는 자아 표현의 확장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외모나 정체성에 대한 자기 검열과 선택의 압력 으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많은 사용자가 이상화된 모습의 아바타를 선택하게 되면서, 그 안에서도 ‘어떤 모습은 더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규범적 기준 이 작동하게 됩니다. 결국 아바타는 나의 분신인 동시에 사회적 승인 욕구와 플랫폼 알고리즘이 결합한...

AI로 디자인된 얼굴: 기술은 이상적인 외모를 어떻게 만들어내는가?

이상적인 얼굴은 누가 설계하는가 최근 SNS와 광고, 이커머스 플랫폼에 등장하는 인물 중 상당수가 실제 존재하지 않는 얼굴 , 즉 AI로 생성된 이미지인 경우가 많습니다. 생성형 AI는 수백만 개의 얼굴 데이터를 학습하여 ‘선호도 높은 외모’를 재구성하며, 기업들은 이를 모델로 활용해 홍보 효과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때 사용되는 얼굴은 대부분 대칭적이고, 피부 톤은 균일하며, 나이와 성별이 모호하거나 특정 인종에 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단지 기술의 효율성 문제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어떤 얼굴이 ‘이상적’이며 ‘신뢰를 준다’고 여겨지는지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반영된 결과 입니다. 결국 AI는 단순히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떤 얼굴을 바람직하게 여겨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문화적 도구 로 작동합니다. 얼굴 데이터는 어떻게 수집되고 사용되는가 AI가 얼굴을 생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대규모 이미지 데이터입니다. 이 데이터는 종종 동의 없이 수집된 SNS 사진, CCTV 영상, 공공 이미지 데이터베이스 등에서 확보되며, 사용자는 자신이 어디서 어떻게 자신의 얼굴 정보가 쓰이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특히 얼굴은 개인의 정체성과 직접 연결된 고유한 정보이기 때문에, 그 활용은 단순한 개인정보 차원을 넘어 존재의 복제와 재조합 문제 로 이어집니다. 이미 일부 플랫폼에서는 ‘내 얼굴과 닮은 가상의 모델’이 상품 광고에 등장하거나, 디지털 휴먼으로 재가공되어 상업적 콘텐츠에 활용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얼굴이 개인의 것이 아니라, 기술과 기업이 소유하고 편집할 수 있는 자산처럼 다뤄지는 현실 을 보여줍니다. 기술은 외모의 다양성을 지우고 있다 생성형 AI는 다수를 기반으로 학습하기 때문에 데이터셋에 편중이 발생하면 결과물 또한 획일화 됩니다. 대부분의 얼굴 생성 모델은 백인 중심, 젊고 날씬한 얼굴, 뚜렷한 이목구비, 균형 잡힌 구조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며, 이는 외모에 대한 기존 편견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 합니다. 반대로 주름이 ...

웨어러블 디바이스와 자기 관리: 기술은 나를 건강하게 만드는가?

우리는 건강을 어떻게 측정하게 되었는가 스마트워치, 피트니스 밴드, 수면 추적기, 스트레스 측정 앱 등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더 이상 특별한 기술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손목에 기기를 차고, 매일 자신의 심박수, 걸음 수, 칼로리 소모량, 수면의 질 등을 확인하며 ‘건강을 관리’합니다. 이 기술들은 마치 개인 맞춤형 건강 코치처럼 작동하지만, 동시에 건강을 수치로 환원하고, 자기 감각보다 데이터의 판단을 우선하게 만드는 새로운 일상 을 형성합니다. 우리는 점점 더 ‘기계가 말해주는 나의 상태’를 기준 삼아 자신의 몸을 해석하게 되고, 기술 없이는 내 몸을 신뢰하지 못하는 상태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건강의 기준은 누가 설정하는가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제공하는 건강 정보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알고리즘은 특정 체형, 특정 인종, 특정 연령대의 평균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그 기준에서 벗어난 몸은 ‘비정상’, ‘경고’, ‘주의 필요’로 표시됩니다. 예를 들어, 심박수나 수면 패턴이 평균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문제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러나 사용자들은 기계가 제시하는 기준에 따라 자신의 몸을 스스로 의심하고, 더 많은 데이터를 축적해 ‘정상에 도달’하려는 반복적 자기 규율 을 수행하게 됩니다. 사이보그 페미니즘은 이러한 과정을 기술을 통한 건강 관리가 자기 권한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통제와 자기 감시로 전환되는 구조 로 해석합니다. 셀프 케어인가, 기술적 자아 감시인가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자기 돌봄’과 ‘자기 최적화’를 위한 도구로 제시됩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철저히 수치와 시각화된 지표를 통해 이루어지며, 사람들은 스스로의 몸을 점수화하고 경쟁하며, 건강을 목표화합니다. 운동을 몇 분 했는지, 수면의 질이 몇 점인지, 체중이 얼마인지가 중요한 지표가 되고, 이 지표를 기준으로 하루를 잘 살았는지 아닌지를 평가하게 되는 구조 는 결국 몸의 경험이 아닌 기술의 수치를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하게 만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