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와 언어: 기술은 정체성을 어떻게 말하게 하는가?
우리는 언어로 자신을 설명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사회와 관계를 맺습니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를 넘어
정체성을 형성하고 표현하는 가장 핵심적인 매개입니다.
그렇다면 기술이 언어를 매개하게 될 때,
우리는 여전히 스스로를 ‘제대로’ 말할 수 있을까요?
음성인식, 자동 번역, 키보드 예측, 챗봇 대화, 인공지능 글쓰기 등
언어를 대신하거나 보조하는 기술들이
우리를 더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동시에
정체성과 표현의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사이보그 페미니즘은 이 기술적 전환 속에서
언어가 누구의 경험을 중심으로 작동하는가를 질문합니다.
기술은 중립적인 언어를 만들 수 있는가?
많은 기술 기업들은
‘중립적 언어’, ‘혐오 없는 말’, ‘차별 없는 번역’을 목표로
AI 언어 모델을 훈련시킵니다.
하지만 알고리즘이 학습하는 텍스트에는
성차별, 인종차별, 계급차별, 성소수자 배제 등
현실의 언어적 편견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직업을 번역할 때
‘간호사’를 여성으로, ‘의사’를 남성으로 번역하는 시스템,
여성 사용자의 말투를 ‘감성적’으로 분석하고,
남성의 언어를 ‘논리적’으로 평가하는 모델 등은
기술이 언어를 통해 정체성에 위계를 부여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사이보그는 언어를 어떻게 경험하는가?
사이보그는 신체와 기술이 결합된 존재이지만,
그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포스트휴먼적 존재의 언어는
기존의 이분법적 체계로는 설명될 수 없습니다.
사이보그적 정체성은 유동적이며,
시시각각 변화하고,
전통적 언어가 담아내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다층적입니다.
그래서 사이보그는
언어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표현 방식을 실험합니다.
아바타의 말투, 이모티콘, 필터, 음성 변조, 다국어 섞기 등
디지털 기술과 결합된 언어는
기존 문법과 위계를 비틀며 새로운 의미의 층을 만들어냅니다.
언어를 통해 말할 수 없는 존재들
기술은 때로 정체성을 침묵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자동 수정 기능이 성중립적 표현을 제거하거나,
SNS 알고리즘이 성소수자 키워드를 제한하는 사례처럼
기술은 특정 집단의 언어 사용을 비가시화하거나
‘부적절한 표현’으로 규정합니다.
이러한 현실은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어떤 언어가 허용되고, 어떤 언어가 금지되는가에 따라
존재 자체가 부정되거나 지워지는 문제로 이어집니다.
사이보그 페미니즘은
기술이 언어를 규정하는 방식 속에서
침묵을 강요당하는 존재들의 권리를 함께 사유합니다.
새로운 언어는 기술과 함께 탄생한다
기술은 언어를 위협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언어적 실천을 가능하게 하기도 합니다.
보청기 사용자, 음성 합성 사용자,
자동 번역기를 통해 소통하는 이주민,
텍스트로만 말할 수 있는 사이보그적 사용자들 모두는
기술을 통해 언어를 재구성하며,
새로운 정체성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사이보그의 언어는 표준화된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의 방식, 신체의 차이, 사회적 위치에 따라
다르게 생성되고 발화되는 언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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