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애도: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기술로 통과하는가?
애도는 온라인으로 옮겨졌다
죽음을 마주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습니다. 장례식에 직접 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실시간 중계, 고인의 SNS 계정을 추모 계정으로 전환하는 절차, AI 챗봇으로 재현된 고인의 목소리나 말투까지. 애도의 공간은 더 이상 제사상이나 공동체 모임이 아니라, 디지털 플랫폼 위에서 구성되는 감정의 구조물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더는 함께 모여 울지 않아도 되고, 대신 댓글과 이모지, AI가 기억하는 메시지로 ‘애도의 수행’을 대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바로 그 순간, 죽음의 의미와 감정의 깊이가 기술에 의해 가공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기억은 누구의 소유인가
고인의 사진, 영상, 문자 기록, 음성 파일은 클라우드에 남아 있고, 유족이나 지인이 원한다면 언제든 꺼내볼 수 있습니다. 나아가 일부 서비스는 생전에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인의 화법과 감정을 재현해 ‘디지털 고인’을 생성합니다. 그러나 이 기술은 ‘기억을 보존한다’는 명목 아래, 고인의 사적 감정과 관계 맥락을 탈맥락화한 상태로 재조립하며, 죽은 자를 말하는 존재로 남기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사이보그 페미니즘은 이 과정을 기억의 민주화가 아니라, 기억의 기술적 재편성과 소유화로 봅니다. 우리는 지금, 죽음을 추모하는 동시에 기술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애도는 감정이 아니라 절차가 되는가
디지털 애도는 ‘잊지 않음’의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기일마다 뜨는 SNS 알림, 시간 맞춰 자동으로 재생되는 추모 영상, 챗봇을 통한 대화 등은 감정의 자발적 흐름이 아니라 설정된 루틴에 따라 움직이는 감정의 자동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슬퍼하고 있는가, 아니면 슬퍼하고 있다는 행동을 기술적으로 수행하고 있는가? 이 물음은 감정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기술이 애도를 ‘형식화된 경험’으로 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감정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의 리듬이 누구에 의해 조정되고 있는지를 묻는 일입니다.
죽음은 사라지고 ‘데이터화된 흔적’만 남는다
죽음은 절단이었지만, 기술은 그것을 연속으로 만듭니다. 고인의 계정은 여전히 존재하고, SNS 알고리즘은 그 사람의 사진을 추억처럼 다시 보여주며, 챗봇은 새로운 대화를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죽은 자와 계속 연결된 상태’를 유지하지만, 이 연결은 물리적 단절을 상실의 감정으로 대면하지 않도록 유예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사이보그 사회에서 죽음은 더 이상 명확한 경계가 아니며, 존재의 흔적은 플랫폼과 서버에 영구히 기록된 데이터로 남아 ‘완전히 사라질 수 없는 존재’가 됩니다. 이는 애도의 윤리와 시간성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기술적 전환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사이보그 페미니즘은 기술이 죽음을 보완하거나 이기려는 시도보다, 죽음을 어떻게 함께 살아낼 것인가를 질문합니다. 기술은 추모의 도구가 될 수 있지만, 그 도구가 감정을 대체하거나 삶의 흔적을 자산처럼 저장하고 전시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때, 우리는 죽음과의 관계마저도 통제 가능한 경험으로 축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어야 합니다. 애도는 감정이 흐르고 무너지며, 관계를 재구성하는 복잡한 시간이자 공간입니다. 죽음을 기계가 ‘다룰 수 있는 것’으로 만들기보다는, 죽음을 감당하고 기억하는 감정의 윤리적 기술을 새롭게 구성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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