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와 감정노동: 인공지능 시대의 공감은 누구의 몫인가?
우리는 서비스를 받을 때, 단순히 기능적인 결과만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말투, 표정, 목소리, 태도 등
‘사람다운 응대’ 속에서 감정적 안정과 만족을 느낍니다.
이처럼 감정을 전달하고 조절하는 노동,
즉 감정노동은 의료, 돌봄, 교육, 서비스업 등
사회 유지에 필수적인 분야에서 수행되어 왔으며,
그 중심에는 언제나 **‘여성’과 ‘비가시적 신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감정노동을
AI 챗봇, 가상 캐릭터, 음성 인터페이스 같은 기술이 대체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이보그는 감정까지도 대신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요?
감정노동은 단순한 친절이 아니다
감정노동은 겉으로 드러나는 미소나 말투를 넘어서,
상대의 상태를 읽고, 감정을 조율하며,
관계를 유지하는 복합적 기술과 노동력이 요구되는 행위입니다.
콜센터 직원, 간병인, 학원 강사, 병원 접수자 등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조정하며
상대의 기분을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노동은 대개 여성에게 집중되어 있으며,
‘자연스럽다’, ‘당연하다’는 사회적 인식 속에
정당한 평가나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수행되어 왔습니다.
감정을 흉내 내는 AI, 그 너머의 질문
AI 음성 비서가 ‘괜찮으세요?’라고 묻고,
챗봇이 ‘기분이 안 좋으시군요’라고 반응할 때,
우리는 그것을 ‘공감’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AI는 감정을 느끼지 않지만,
감정을 흉내 내는 말투와 반응을 학습해 사용자와 상호작용합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AI와의 대화에서 위로받고,
심리적 지지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이보그 페미니즘은 이 지점에서 묻습니다.
공감은 단지 반응의 문제인가, 아니면 관계의 문제인가?
기계가 흉내 내는 감정은 진짜 감정일까,
혹은 새로운 형태의 감정 작동 방식일까?
감정노동의 자동화는 누구에게 이득인가
AI가 감정노동을 대체하게 되면,
가시적으론 감정 소모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변화는
감정노동을 해오던 수많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그 노동이 지닌 의미와 기술을 축소시킬 수 있습니다.
특히 여성 노동자,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으로 감정노동에 많이 종사하던 계층에게
이 변화는 해방이 아닌 또 다른 배제의 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기술이 감정노동을 수행할 수 있다고 판단할 때,
그 결정은 무엇을 기준으로, 누구의 경험을 배제한 채 이루어지는지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감정은 기술이 흉내 낼 수 없는 ‘정치적 힘’이다
사이보그 페미니즘은 감정을 단지 ‘개인적인 감정’으로 보지 않습니다.
감정은 사회 구조 안에서 작동하며,
어떤 감정은 권장되고, 어떤 감정은 억압되는
정치적 질서의 일부입니다.
AI는 감정을 모방할 수는 있어도,
그 감정이 발생하는 사회적 맥락과 권력 구조까지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감정노동의 자동화는 기술적 진보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누가 감정을 감당하고, 누가 소비하는가라는
불균형한 구조가 재생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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