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자동화: 기술은 우리의 하루를 어떻게 설계하는가?
시간은 이제 자동으로 흐른다
기상 시간 알림, 일정 관리 앱, 생산성 분석 툴, 운동 리마인더, 스마트워치의 수면 분석까지 우리의 하루는 기술이 설계한 리듬에 따라 나뉘고 조율됩니다. 기술은 삶을 더 잘 조직해주는 도구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어떤 시간은 ‘의미 있는 것’으로, 어떤 시간은 ‘낭비되는 것’으로 구분하는 기준이 숨겨져 있습니다. 사이보그 사회는 단순히 시간을 측정하는 사회가 아니라, 시간을 가치화하고 분류하며 규범화하는 사회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기술에 의해 사용당하는 존재로 변하고 있습니다.
생산성이 시간의 기준이 된다
오늘 몇 시간을 집중했는가, 몇 번 휴대폰을 들었는가, 얼마나 이동했는가, 몇 칼로리를 소모했는가—모든 시간은 수치로 환산되어 효율을 기준으로 평가됩니다. 비생산적인 시간은 개선되어야 하며, 의미 없는 시간은 삭제되어야 하며, 쉬는 시간조차 관리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기술은 시간을 ‘유익함’이라는 단일 가치로 포장하며, 사람의 하루를 성과 중심적 루틴으로 압축시킵니다. 사이보그 페미니즘은 이러한 흐름을 기술이 인간의 생존성을 넘어 ‘기능성’으로 존재를 전환하는 과정이라 지적합니다.
자연스러운 시간은 삭제된다
몸은 일정하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감정은 갑자기 변하고, 집중력은 흔들리고, 어떤 날은 이유 없이 멍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술은 이런 비예측적이고 유기적인 시간 흐름을 ‘비효율적’으로 간주하며, 일정한 루틴을 따르도록 푸시하고 리마인드하며 리포트합니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의 리듬보다 기계가 정한 이상적인 하루의 구조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감각을 조정하게 됩니다. 기술은 우리의 하루를 정돈해주지만, 동시에 우리가 스스로 느끼는 시간의 감각을 잠식하기도 합니다.
시간 감각의 상실은 존재 감각의 상실로 이어진다
하루를 마치고 나면 남는 건 수치와 그래프, 달성률과 분석 리포트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고, 누구와 관계 맺었으며, 무엇에 머물렀는지는 기록되지 않습니다. 기억되지 않는 시간은 의미 없는 시간으로 취급되며, 우리는 점점 더 감정 없는 존재, 과정 없는 존재, 기록 가능한 존재로만 구성됩니다. 시간의 자동화는 존재의 자동화를 동반하며, 이는 삶의 질을 높이는 기술이 삶의 감각을 오히려 삭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사이보그 페미니즘은 기술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다만, 기술이 시간의 의미를 좁히고 사람의 하루를 효율로 정의하는 구조에 질문을 던집니다. 어떤 시간은 생산적이지 않아도 소중하고, 어떤 시간은 멈춤으로써 의미를 얻으며, 기록되지 않아도 깊은 감정을 남기는 순간들이 존재합니다. 기술은 시간을 조직하는 도구가 아니라, 삶의 리듬을 존중하며 유동적인 하루를 가능하게 하는 감각적 파트너가 되어야 합니다. 시간은 소비하는 자원이 아니라, 공명하고 기억되는 관계의 흐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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